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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윤실의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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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큅코리아ga 작성일 19-09-27 00:21 조회 167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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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윤실의 어제오늘 그리고 내일                                                           (2019년 9월26일 부산 기윤실 집담회 발제문)

정병오(서울 기윤실 공동대표)

 

1. 기윤실은 어떤 시대적 맥락에서 시작이 되었나?

 

모든 조직은 특정 역사적 맥락에서 시작이 되고 그 가운데서 조직의 정신과 사명이 탄생된다. 이러한 역사적 맥락을 무시한 채 조직의 정신과 사명을 강조하다 보면 자칫 교조주의에 빠져 변화하는 시대 가운데서 도태되기 쉽다. 혹은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 가운데서 처음 붙잡았던 조직의 정신과 사명을 낡은 것으로 버리고 시대의 조류에 맞는 새로운 정신과 사명을 채택하다 보면 조직의 역사성은 사라져버리기도 한다. 그러므로 조직이 건강성과 지속성을 갖기 위해서는 그 조직이 처음 붙들었던 정신과 사명이 태동된 역사적 맥락을 잘 읽어 내고, 이를 바탕으로 처음 정신과 사명을 변화하는 시대 가운데서 재설정하고 여기에 맞는 과제를 도출해낼 수 있어야 한다.

 

기윤실은 1987년에 시작이 되었다. 그 시대 한국 사회를 관통하는 시대정신은 민주화정의였다. 박정희 정부의 19년 독재의 끝에 등장한 전두환 정부는 민주화에 대한 국민의 열망을 무력으로 짓밟았지만 그럴수록 국민적인 저항은 거세어져갔다. 이러한 정통성을 상실한 불의한 통치에 편승하여 사회 각 분야에 불법과 불의가 난무하면서 사회적 약자들을 고통으로 몰아넣는 구조적 모순들이 편만해 있었다.

 

이러한 시대적 불의와 모순 앞에서 교회는 무력했다. 물론 일부 진보적인 신앙을 가진 교회들은 적극적으로 민주화 운동에 앞장을 섰다. 하지만 대부분의 보수적인 신앙을 가진 교회들은 시대와 담을 쌓고(혹은 침묵으로 독재와 불의에 동조하면서) 교회 성장에만 힘을 쏟았다. 다행히 그 시대는 1970년대부터 지속된 교회 성장세가 계속되는 시대였지만 교회는 그러한 성장의 열매를 교회당 건축, 기도원 땅 매입 등 자산 축적과 교세확장의 기회로만 활용했다. 그리고 복음을 종교적인 의무 충실을 통한 현세적 복을 누리는 것으로 좁히고 왜곡하였고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서의 윤리적 삶과 세상 가운데서의 소명 실천을 통해 확장되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펼쳐주지 못했다.

 

당시 군부독재의 통치 억압과 사회에 만연된 불법과 불의에 저항하는 중심 세력은 대학생 운동권과 진보적 지식인 그룹이었다. 이들은 투옥과 고문을 두려워하지 않고 독재에 저항하였으며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고 가난한 자들과 함께 함으로 민주화와 정의를 이끌었다. 하지만 이들은 군부독재의 억압이 강화될수록 이에 맞설 수 있는 강력한 이념적 토대를 필요로 했고 주로 마르크스주의 이론에서 사회를 보는 눈과 투쟁의 동력, 방법론을 끌어왔다. 그러다보니 민주화와 사회 정의를 넘어 마르크스주의에 기반한 체제 변혁을 꿈꾸었고 이를 위한 폭력적인 저항도 정당화하는 흐름으로 가고 있었다.(물론 이 흐름은 1990년 소련과 동구 공산주의 몰락과 함께 약화되었다)

 

한편 1970년대부터 이어진 교회의 급성장은 학생선교단체들과 기독지성인의 성장도 가져왔다. 이들도 여전히 복음전도를 삶의 중심에 놓고 있었지만 군부독재의 억압과 사회에 만연한 불의를 외면할 수가 없었고 자신이 가진 복음의 관점에서 사회정의의 문제를 어떻게 조화할 수 있을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당시 민주화 운동의 주류를 형성하고 있던 대학생 운동권과 진보적 지식인들의 수고와 헌신에 부채의식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들의 이념적 지향과 운동 방법론에는 동의할 수가 없어 함께 하기를 주저하고 있었다. 이들은 하나님의 말씀과 기독교 세계관에 근거해 이 시대가 안고 있는 불의의 원인을 밝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자신을 던져 헌신하기를 원하고 있었지만 이를 담아낼 수 있는 마땅한 틀이 없어 방황하고 있었다.

 

기윤실은 이러한 기독 청년들과 지성인들의 고민에 대한 응답으로 시작이 되었다. 1985년 즈음부터 손봉호 교수님을 중심으로 시작된 서울대학교 교수 성경공부 모임에서는 로이드존스 목사님의 산상설교를 교재로 지속적인 모임을 갖고 있었다. 이 성경공부를 진행하는 가운데 복음에 기반한 이웃사랑의 실천으로서 이 시대의 불의를 고쳐나가는 기독 운동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이러한 공감대를 바탕으로 1987년 창립을 하자 이러한 취지에 공감을 하는 고민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동참함으로 운동이 본격적으로 출범하게 되었다.

 

 

2. 기윤실의 성격과 정체성

 

모든 단체는 시작을 할 때 다음과 같은 고민의 과정을 통과해야 한다. “우리 단체가 해결해야될 시대적 과제는 무엇인가?” “이 과제를 이미 감당하고 있는 단체는 없는가?” “이 과제 해결을 위한 우리 단체만의 고유한 해결책과 방법론을 가지고 있는가?” “우리와 비슷한 성격을 가진 단체들과 구분되는 우리 단체만의 고유한 특성은 무엇인가?” 물론 이 고민에 대한 답을 다 제시한 후에만 시작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어떤 고민들은 운동을 하는 과정에서 해결되기도 하고 또 처음에 생각했던 답이 운동을 하면서 바뀌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고민의 과정 없이 무작정 단체를 시작하거나 운동을 하는 가운데 이 고민을 놓쳐버리면 역사적으로는 의미가 없는 조직의 생존 자체가 목적이 되어버릴 수가 있다.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기윤실은 복음에 기반하여 사회의 불의를 개선하며 그 가운데서 고통당하는 이웃의 고통을 덜어주고자 하는 취지에서 시작되었다. 기윤실이 시작될 당시 많은 고민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이러한 운동에 목말라 있었다. 그러기 때문에 운동이 시작되자마자 많은 사람들이 호응을 했고 한국 교회와 사회에 많은 기여를 하면서 지금까지 올 수 있었다. 하지만 운동의 큰 방향과 대략적인 성격은 분명히 하고 출발을 했지만 세부적인 부분은 실제로 운동을 해 오면서 더 분명해지고 풍성해졌다. 그리고 시대의 변화와 함께 보완된 부분도 많이 있다. 이러한 종합적인 흐름에서 볼 때 현재 기윤실의 성격과 정체성은 다음 4가지 정도로 정리해볼 수 있을 것 같다.

 

첫째, 개인윤리의 기반 위에서 사회 정의를 추구하는 윤리운동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기윤실이 처음 시작될 1980년대에는 사회를 정의롭게 바꾸기 위해서는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직시하고 그것을 바꾸어내는 일에 집중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강했다. 개인의 도덕적 실천을 무가치하게 여긴 것은 아니었지만 자칫 개인의 도덕적 실천에 대한 강조가 사회적 구조를 바꾸는 일에 대한 집중도를 약화시킬 것이라고 경계했다. 나아가 사회적 구조를 바꾸어가는 일에 집중하는 과정에서 개인의 도덕성에 문제가 되는 일이 발생하더라도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거나 합리화는 경향도 많이 있었다. 이러한 경향은 정치사회적 억압적인 구조가 워낙 강고했고, 이러한 잘못된 구조 가운데 권력과 기득권을 가진 자들이 이러한 기득권에 도전하지 못하도록 억압받는 자들의 도덕성을 강조했던 것에 대한 반작용의 영향도 있었다.

 

기윤실은 이러한 상황을 이해했고, 개인윤리를 잘 지키는 것으로 사회의 모순된 구조를 바꾸는 일을 대체할 수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기윤실은 개인들이 철저하게 양심과 도덕을 지키는 분위기가 형성될 때 그로 인해 사회적 약자들이 보호를 받는 등 그 힘과 영향력이 결코 작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도덕과 양심을 잘 지키는 분위기의 확산과 연대의 강화는 불의한 사회구조와 모순들을 균열을 내고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무엇보다 기윤실은 기독교 복음은 개인을 하나님 앞에 세우며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라 이웃을 위해 살도록 하는 것이기 때문에 개인윤리에 기반한 사회의 정의를 추구하는 것이 지극히 자연스럽다고 보았다.

 

그래서 기윤실은 처음부터 검소, 절제, 나눔, 정직을 중요한 가치로 내세우고 실천해왔다. 지극히 개인적인 윤리들이다. 하지만 자신을 위해 최소한 소비하고 이웃을 위해 나누는 삶을 사는 것은 환경을 보호하고 지속가능한 세상을 만드는 첫걸음이고, 또 약한 이웃들과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를 만들어가며 사회를 따뜻하게 만드는 기반을 만드는 일이다. 그리고 이렇게 이웃을 위해 절제하고 약자를 위한 정의를 실천하다 보면 개인의 실천으로 다 감당이 되지 않는 구조적인 한계에 부딪히게 된다. 바로 그 개인윤리적인 실천의 기반에서 나오는 그 에너지와 도덕성을 바탕으로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바꾸어나가는 노력을 해 나가고 있다. 이것이 기윤실이 가진 고유한 운동의 방법론이며 지극히 기독교적인 방식인 것이다.

 

둘째, 교회의 사회적 책무성을 위임받아 전문적으로 수행하는 교회병행단체이다.

 

이 세상에 기독교인들로 구성된 다양한 모임과 단체들이 있다. 이 가운데 복음전도를 목적으로 하는 단체들은 기독교 정체성을 강조한다. 대학생 선교단체나 어린이나 청소년 선교 단체들이 대표적이다. 반면에 사회정의를 목적으로 하는 단체들은 기독교 정체성을 강조하지 않고 기독교 정신을 바탕으로 하되 일반인들과 함께 사역을 한다. 월드비전과 같이 구호나 복지를 전문으로 활동하는 단체들이 그렇고, YMCA YWCA 같은 사회 계몽 단체들도 그렇다. 이에 반해 기윤실은 사회정의를 목적으로 하면서도 기독교 정체성을 분명히 한다. 사회 정의와 관련해서 일반 사회 단체들과 연대도 하고 비슷한 목소리를 내기도 하지만 기독교인들로 회원 구성을 하고 여러 활동들도 기독교 신앙에 기반한다.

 

이것은 기윤실이 교회의 사회적 책무성을 위임받아 전문적으로 수행하는 교회병행단체라는 정체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교회는 이 세상 가운데 하나님 나라를 세워가는 핵심 기관이다. 하지만 교회가 하나님 나라의 모든 일을 다 감당할 수가 없기 때문에 교회는 말씀을 선포하고 예배를 집례하며 복음을 전파하여 영혼을 구원하며 성도들이 세상 가운데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일에 집중해왔다. 그리고 이에서 파생되어 하나님 나라의 각 영역을 세워가는 일은 성도들이 교회병행단체를 세워 교회를 보완하며 세워가는 일을 해왔다. 이를 위해 수많은 학생 선교단체, 해외 선교단체, 구호 및 복지 단체들이 활동해 왔고, 기윤실은 사회 가운데 하나님의 통치가 보다 구체적으로 임하도록 하는 일을 함을 통해 하나님 나라와 교회를 세워가는 일에 부름을 받은 것이다.

 

그러기에 기윤실은 처음부터 모든 활동을 교회와 함께 하려고 노력해왔다. 교회의 물적 인적 자원의 지원을 받아 운동을 했고, 교회가 해야 할 일을 대신해서 좀 더 전문적으로 하기 위해 애써왔고, 이 모든 활동을 통해 교회가 좀 더 온전히 세워지는 것을 목적으로 사역을 감당해왔다. 이를 위해 때로 교회를 비판하기도 하지만 이것도 교회 밖에서 교회를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의 한 일원으로서 교회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해 왔다. 우리 사역을 통해 교회가 세상을 좀 더 잘 섬기게 되고, 그로 인해 교회가 세상으로부터 더욱 신뢰를 받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일해 왔고 앞으로 그렇게 해야 할 것이다.

 

셋째, 교회의 사회적 신뢰도를 높이는 교회개혁운동이다.

 

기윤실은 성도들이 복음에 합당한 윤리적인 삶을 살도록 독려함을 통해 그 힘을 기반으로 세상의 정의를 실천하는 윤리 운동이다. 동시에 교회의 사회적 책무성을 위임받아 전문적으로 수행하는 교회병행기관이다. 이러한 기윤실의 성격이 필연적으로 제기하는 질문이 바로 교회는?”이다. 윤리적으로 변화된 성도들이 사회를 바꾸기 전에 교회를 먼저 돌아보라는 목소리다. 교회가 사회적 책무성을 감당하기 전에 과연 교회라는 조직은 얼마나 건강한지, 사회적 책무성을 말할 자격이 있는지 돌아보라는 목소리에 응답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러한 교회개혁에 대한 목소리는 사회의 요구이기 이전에 철저하게 개인윤리에서 출발하여 사회의 정의를 추구하는 기윤실의 근본 정신에 부합하는 요구이기도 하다.

 

하지만 기윤실의 교회개혁운동은 교회의 모든 부분을 다 개혁한다고 할 수는 없다. 교회의 핵심인 예배나 말씀, 성례 등은 기윤실이 감당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이 부분은 신학교나 총회, 노회가 중심이 되어야 한다. 이런 차원에서 기윤실은 예배, 말씀, 성례와 같은 교회의 본질적인 부분이 아닌 재정 사용, 의사결정 구조, 목회자 청빙, 사회봉사 등과 관련된 파생적인 부분의 개혁에 집중을 해왔다. 물론 파생적인 부분이라고 해서 본질적인 부분보다 덜 중요한 것은 아니다. 대사회적으로 볼 때는 본질적인 부분보다 파생적인 부분이 더 눈에 띄고 교회의 사회적 신뢰도에 더 많은 영향을 미친다. 그리고 파생적인 부분은 본질적인 부분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그 구분이 명확하지는 않고 서로 넘나들 수밖에 없다. 하지만 개념상으로는 이러한 구분과 한계 설정이 필요하다.

 

기윤실은 지금까지 교회개혁과 관련해서 교회 재정을 투명하게 운영하는 부분과 교회 재정을 이웃을 위해 많이 사용하도록 하는 부분, 후임 목회자 청빙 관련해서 세습반대 운동 등에 집중해 왔다. 그리고 교회의 모범 정관 갖기, 정치적 중립 지키기, 부교역자 처우개선 등과 관련된 일도 해왔다. 앞으로도 교회개혁은 이런 맥락에서 이루어질 것으로 보인다.

 

넷째, 복음을 기반으로 이웃사랑을 실천하는 기독 시민운동이다.

 

기윤실의 처음 출발은 일부 명망가들이 대중을 깨워나가는 계몽운동에 가까웠다. 하지만 점차 이에 동조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참여하게 되고, 또 사회 각 부분이 갖고 있는 문제를 구체적으로 고쳐나가면서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나 이에 관심을 가진 일반 시민들이 참여하는 시민운동의 성격을 갖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에서 시민운동이 본격적으로 확산되기 시작된 기점을 1989년 경제정의실천연합의 출범으로 잡는다고 할 때 기윤실은 한국 사회 시민운동의 선구적인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다.

 

특별히 기윤실은 헌신된 그리스도인들이 자신의 에너지를 교회 봉사에만 쏟던 상황에서 사회의 공익이나 사회적 약자의 고통을 덜어주는 일을 위해 자신의 시간과 전문성을 사용하는 것도 하나님 나라를 섬기는 길이라는 것을 열어줌으로 기독 시민운동으로서의 정체성을 갖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렇게 기윤실이 열어준 기독시민운동의 장 안에서 많은 기독 시민들과 전문가들이 자신의 은사를 드려 활동을 했고, 이후 많은 단체들이 분화되어 나갔다. 기윤실이 기독시민운동의 산파 역할을 해왔고, 지금은 맏형 역할을 감당하고 있다.

 

 

3. 초기 기윤실 운동의 성공적인 정착 요인

 

많은 단체들이 자신들이 풀어야 할 과제를 안고 시작하지만 그 모든 단체가 성공적으로 정착을 하고 지속가능한 조직으로 발전하는 것은 아니다. 기윤실은 감사하게도 초기 정착을 잘 했을 뿐 아니라 시작과 더불어 한국 교회와 사회 가운데 영향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어떤 의미에서는 처음 시작 10 여 년이 기윤실의 전성기였고, 이후는 여러 우여곡절을 거치면서 조정기를 거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므로 초기 기윤실의 성공적인 정착 요인을 살펴보는 것은 기윤실의 현재와 미래를 준비하는데 좋은 참고가 될 것으로 보인다.

 

첫째, 대중을 움직일 수 있는 메시지와 영향력을 가진 리더십

 

기윤실의 창업자라고 할 수 있는 손봉호 장로님은 처음부터 이 운동에서 본인이 부각되는 것을 싫어했다. 그래서 호칭도 대표라고 하지 않고 항상 실무책임자라고 붙였다. 그리고 이 실무책임자도 혼자 하지 않고 항상 공동실무책임자로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의 존재감이나 중요도가 약화되는 것은 아니었다. 그는 시대의 판을 읽고 핵심이 무엇인지를 잡아내는 능력이 탁월했고, 이를 가장 대중적인 언어로 그리고 복음의 본질과 연결해서 대중들에게 전달하고 그들의 마음을 잘 이끌어내었다. 그렇지만 그는 이 운동으로 인한 영광을 자신을 취하지 않으려고 애를 많이 썼고, 실무적인 부분에서는 자원 활동가나 상근 활동가에게 대폭 위임을 했다.

 

둘째, 시대가 요구하는 과제를 잡아내고 대안을 만들어낼 수 있는 헌신된 자원 활동가

 

손봉호 장로님은 이 운동을 통해 자신이 드러나는 것을 원하지 않으셨고, 또 자신이 모든 분야의 전문가가 될 수 없음을 잘 알았기에 처음부터 조직의 의사결정을 실행위원회구조로 운영했다. 그리고 필요한 운동이 있으면 먼저 그 분야의 전문가들을 조직하고 그 그룹에서 대안을 만들 수 있도록 했다. 처음에는 주로 손장로님에게 배웠던 제자 그룹들이 많이 헌신을 했고, 그렇지 않더라도 손장로님과 기윤실이 갖는 기독 진영 내 신뢰도가 전문가 그룹을 묶어내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셋째, 준비된 대안을 회원 및 대중들의 손에 잡히는 운동으로 바꾸고 이를 사회적으로 확산하는 감각을 가진 상근 활동가

 

기윤실 초창기에는 계몽운동성격을 가졌기 때문에 손장로님이나 실행위원들의 강연 활동만으로도 충분한 의미를 가질 수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구체적인 과제를 선택해서 집중적인 운동을 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고는 상근 활동가를 세우고 사무국을 중심으로 운동을 이끌어가도록 조직을 정비했다. 초기 사무국을 세팅하고 상근 활동가들의 역량을 키워가는 일에는 초대 사무처장인 유해신 처장과 2대 처장인 권장희 처장이 탁월한 리더십을 발휘했다.

 

넷째, 조직의 비전과 운동을 자신의 삶 가운데서 실천하고, 이를 확산시키기 위해 물질과 시간을 헌신하는 회원

 

기윤실은 그리스도인들이 복음이 가진 능력을 이웃을 사랑하고 세상을 변화시키는데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는 현실에 안타까워하는 기독교인들의 갈급함에 불을 붙인 운동이었다. 그래서 기윤실이 시작되자마자 기윤실 운동을 자신의 운동으로 삼아 자기 삶에서 실천하며 이 운동의 확산과 열매를 위해 자신의 시간과 물질을 드리고자 하는 적극적인 회원들이 많이 일어났다. 이러한 회원들의 자발성은 전국적으로 지역 기윤실이 일어나는 동력이 되었을 뿐 아니라 운동이 각 영역별로 확산되는 데도 큰 기여를 했다.

 

 

4. 기윤실의 성과와 열매

 

지난 30년 기윤실 운동의 성과와 열매를 간단하게 정리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다만 구체적인 성과의 결실로 기여한 부분과 잘못된 부분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고 올바른 기준을 제시해온 부분으로 나누어 생각해볼 수는 있을 것 같다. 시민운동은 입법권이나 행정력, 사법권을 가진 정부 기관이 아니기 때문에 대부분의 활동은 정부 기관이 그 역할을 하도록 압박을 가하는 것을 주 활동으로 한다. 하지만 실제로 입법이나 행정 집행으로까지 결실을 맺는 것은 드문 일이다. 그러기 때문에 입법이나 행정 집행으로 결실을 맺지 못하더라도 그 필요성에 대해 국민들의 의식을 깨우고 여론을 형성하는 과정도 매우 중요한 성과라고 할 수 있다.

 

첫째, 권력 기관을 상대로 구체적인 성과의 결실을 맺은 부분

 

기윤실 운동이 구체적인 성과를 맺과 우리 사회 발전에 의미있는 기여를 했던 대표적인 운동은 스포츠신문 음란물 게재를 철회시켰던 부분일 것이다. 청소년과 아동을 포함한 전 국민이 보는 대중 매체가 경쟁적으로 음란 사진과 글을 게재하는 상황에 대한 지속적인 문제제기와 불매운동을 통해 모든 스포츠 신문들이 이를 철회했을 뿐 아니라 1면에 사과문을 싣고 나아가 건강한 성문화의 중요성에 대한 손장로님의 글을 게재했던 이 일은 시민운동이 일간 언론을 대상으로 승리한 기념비적인 일로 회자되고 있다.

 

또 다른 운동은 공명선거운동이다. 당시 선거 때마다 엄청난 돈이 뿌려지고 불법이 자행되던 상황에서 기윤실이 공명선거운동연합을 주도하여 공명선거 캠페인을 벌일 뿐 아니라 선거법 개정 운동을 통해 돈 선거를 막는 엄격한 공직자 선거법 개정 성과를 얻었다. 그리고 이후 선관위 차원에서 불법 선거를 막는 활동이 강화되면서 이 분야에 있어서 시민운동이 해야 할 일이 현저하게 줄어들게 되었다.

 

둘째, 잘못된 부분을 지적하고 올바른 기준을 제시한 활동

 

기윤실은 그리스도인의 삶이 종교적 의례를 충실히 하는 데서 그쳐서는 안 되고 이웃을 위한 절제의 삶, 약자를 위한 정의를 추구하는 삶이 되어야 함을 강조하고 이를 위한 구체적 실천 운동을 제시해 왔다. 초기에는 소형차 타기 운동, 유산 물려주지 않기 운동 등을 전개해서 사회적 호응을 얻었고, 이후에는 자발적 불편 운동이라는 이름으로 우리 삶의 각 부분에서 절제와 나눔의 삶을 실천을 함께 하고 있다. 물론 우리 시대의 물질주의 조류가 워낙 거세고, 교회도 물질주의와 세속화에 많이 물든 상황에서 이 흐름을 바꾸는 것은 쉽지 않지만, 최소한 그리스도인 윤리의 기준과 표준을 제시함으로 성도들과 그리스도인을 불편하게 하는 역할은 계속 하고 있다.

 

다음으로 교회와 사회가 저지르는 현저한 잘못들을 지적하고 꾸짖을 뿐 아니라 보다 교회와 사회가 바르게 나아가기 위한 크고 작은 실천적 대안을 제시하는 일을 해왔다. 교회적으로는 목회자들의 성윤리 문제, 담임목사직 세습, 부교역자 처우 개선, 교회 재정의 투명성 등의 문제를 제기해왔고, 사회적으로는 음란 도박 사행 산업 추방, 건강한 대중 문화 만들기, 전월세 올리지 않기 운동, 청년 부채 해방 등의 운동을 추진해왔다.

 

이와 더불어 변화하는 시대 가운데 새롭게 제기되는 윤리적 문제들에 대해 그리스도인이 어떻게 보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 지에 대한 관점을 제공하는 역할들도 지속적으로 해오고 있다. 다양한 이슈들에 대한 토론회 개최, 목회자를 위한 세상 읽기 온라인 뉴스레터인 좋은나무발간 등의 활동을 해오고 있다.

 

셋째, 다양한 기독 운동의 산파 역할

 

기윤실이 처음 의도한 역할은 아니지만 기윤실이 한국 교회와 사회 가운데 했던 중요한 역할 중의 하나가 다양한 기독 운동의 산파 역할을 한 것이다. 이는 기윤실이 기독시민운동을 처음 시작했던 단체로서의 위상 때문이기도 하지만 기윤실이 단체의 성장이나 성과에 집착하지 않고 하나님 나라의 관점에서 개방적인 태도를 취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런 의미에서 기윤실의 성과라고 분류하는 것이 무리가 아니라고 판단된다. 기윤실이 직간접으로 산파 역할을 한 단체는 10 여 개가 넘지만 그 가운데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몇 단체만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우선 기윤실에서 성장하여 독립한 대표적인 기독 직능인 단체로 좋은교사운동을 들 수 있다. 좋은교사운동은 기윤실 교사모임이 다른 10 여 개 기독교사 단체들과 연합하여 만든 기독교사 연합모임이다. 기윤실은 초기 교사모임이 교육계 내에서 정직 운동과 학교와 교실을 변화시키는 모임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을 했고, 이후 기윤실 교사모임이 다른 기독교사 단체들과 연합을 하는 과정이 잘 이루어질 수 있도록 지원을 했다. 현재 좋은교사운동은 전국에 4,000 여 명의 회원을 가진 기독교사 단체로서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사역 뿐 아니라 우리 교육 전체를 품고 개혁을 위해 노력하는 조직으로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기독법률가회(CLF)도 기윤실에서 독립한 대표적 직능단체다. 기독법률가회는 원래 기윤실 산하 변호사들의 모임으로서 예수 사랑 변호사회로 출발했다. 이후 조직이 커지면서 법률 영역에서의 하나님 나라를 꿈꾼다는 목표 하에 독립을 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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